나쁜 페미니스트

록산 게이

이 강렬한 원칙들은 <데어 미>에서도 눈길을 사로잡는데 이것이 소녀들 사이의 불안한 친밀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몸에 관한 소설이자 완벽함을 향한 열망을 보여주는 소설, 야망에 대한 소설이고 다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에 관한 소설이다. 독자는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에게 심각한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를 바라게 된다.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아무리 눈 뜨고 못 봐주더라도 말이다. ... 그들은 악행을 저지르고 그러면서도 서로를 중력처럼 끌어당긴다. 베스는 술에 취해 아디에게 전화해 묻는다.

그때 같이 구름다리에서 놀았던 것 기억나? 서로 몸에 다리 올리고 있던 거? 이제 우리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왜 아무도 우리를 이길 수 없게 되었는지 알았고, 우리가 서로를 절대 이길 수 없을 거란 것도 알았잖아. 하지만 우리는 셋을 세면서 서로의 손을 놔주기로 했어. 너란 여자는 언제나 날 속이고 나도 그렇게 하라고 내버려 두니까. 하지만 난 널 바라보았고 교정하기 전에 그 틈이 벌어진 이를 마음껏 내보이며 웃었잖아.


남자들은 정말로 이런 여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들은 속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수많은 여자들이 기꺼이 그런 여자인 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곤 걸>)

이는 소설 속에서 좋아할 수 없는 여성들에 대해 이제까지 잘 이야기되지 않은 진실이다. 그들은 그런 척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인 척 연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럴 에너지도 없고 그러고 싶은 욕망도 없다. 그들에겐 메이 웰랜드처럼 자신에게 요구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 우리가 좋아하지 못하는 여자들은 그런 여자가 되고 싶은 유혹을 거부하고 대신 그들 자신이 된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 이 세상에는 읽고 싶은 이야기 하나가 더 탄생한다.


나는 자기의 몸과 자기 자신을 아주 약간이라도 싫어하지 않는 여성을 단 한 명도 만난 적이 없다. 몸에 대한 집착은 불가피함이라는 속성 때문에 인간을 형성하는 조건일지도 모른다.


여성을 남녀차별적이고 멍청하고 한심한 방식으로 그린 형편없는 텔레비전 쇼가 널리고 널렸다. 영화판은 더 심해서 영화에서는 여자 캐릭터를 만들 때 한두 가지 아이디어밖에 떠오르지 않는 것 같다. 여성을 캐리커쳐처럼 과장한 다음 그 캐리커쳐를 우리 목구멍까지 밀어 넣으려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대중문화에서 이제까지와 다른 여성을 보게 되면, 이를테면 S사이즈 옷을 입지 않거나 남자를 우주의 중심으로 여기지 않는 여성을 보게 되면 우리는 그 한 작품에 열렬히 매달리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가진 것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종류의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에서 여성을 다루고 있지만 그 중에서 우리가 정말 알 것 같은 여성이 나오는 건 몇 편이나 있는가?


루스는 도망치고 싶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어디를 가건 이렇게 털어놓고 싶었다. 내 자신과 화해할 수 없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알아요? 그녀는 존재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그녀는 어찌 된 일인지 일상의 공포에 무감각해지고 말았다. 오직 이미지, 수많은 이미지들만이 그녀의 머리에 가득했다. 이 폭력적인 삶을 그녀는 텅 빈 시선으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 프랑스의 페미니즘 이론가 엘렌 식수는 <메두사의 웃음>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성들은 자신을 텍스트 안에 집어넣어야 한다. 이제까지 자신을 이 세상과 역사에 집어넣었던 것처럼 스스로 그렇게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남자와 어느 정도 사귀고 나서 남자가 희망이 담긴 목소리로 “피임약 복용하니?” 라고 물었을 때 내가 “아니? 그러는 너는?” 하고 답할 때이다.